[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두 달째로 접어든 의정 갈등의 끝은 4·10 총선 결과에 따라 좌우될 전망입니다. 의료계는 단일대오를 형성, 총선 전에 타협점을 내주지 않으면서 정부를 계속해서 압박 중입니다. 정부는 '의대 증원 2000명' 후퇴까지 시사하는 등 더 이상 총선 악재로 활용되지 않길 바라는 눈치입니다.
결국, 총선 결과에 따라 의정 갈등의 방향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전망입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참패할 경우 의대 증원 고집은 어려워질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의사들도 총선 결과에 연동해 향후 대정부 투쟁 수위를 정할 것이란 게 의료계 내 중론입니다.
의사단체, 단일대오로 전열 재정비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3시간가량 회의 끝에 “대통령과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의 만남은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고 평가한다”며 “의협 비대위는 전공의들과 학생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의료계의 통일된 안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저희는 초지일관으로 ‘증원 규모 재논의’를 요청하고 있다”며 “2000명 증원과 관련해 교육부의 프로세스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의협은 총선 직후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의대생 등이 모여 합동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간 만남으로 분열된 의사들 내 분위기를 추스르고, 그동안 개별 목소리를 내왔던 의사단체들을 한 데 규합해 정부에 맞서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앞서 박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 만났다는 소식에 전공의들은 물론 의대 교수들 내에서도 격앙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일부 전공의들은 박 위원장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 주요 내용과 비상진료체계 상황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쟁점 '의대 증원 2000명'…정부 "변경, 불가능하지 않다"
정부도 일단 화답했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8일 의사단체들이 단일대오를 형성,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로 한 것에 대해 “대표성 있는 협의체 구성에 진일보한 형태로 평가를 할 수 있다”며 “앞으로 이들 모임이 더 활성화가 된다면 함께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한다”고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특히 의정 갈등의 최대 쟁점인 '의대 증원 2000명' 관련해 “2000명이라는 결론을 변경할 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된다면 재검토한다”면서 “신입생들 모집 요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물리적으로 변경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였습니다. 박 차관은 “지금 1년을 유예하는 것은 일단 지금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것은 아니고 잠시 중단을 하고 더 추가적인 논의를 해보자, 이런 취지로 이해를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 내부 검토는 하겠다”며 “현재로서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렇게 결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고 했습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협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분수령은 '총선 결과'…칼자루, 의사에게 넘어가
의정 갈등의 장기화로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는 등 민심 이반마저 우려되자, 정부가 한 발 크게 물러선 모양새입니다. 보수 표심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졌던 의사들이 강경한 대정부 투쟁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총선에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여권 내 해석입니다. 환자 및 보호자들도 의료대란의 현실화에 정부의 양보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분수령은 총선 결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의힘이 100석 미만의 대참패로 끝날 경우 의료개혁 명분으로 추진된 필수의료정책 패키지는 동력을 크게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범야권이 제동을 걸 게 뻔한 상황입니다. 정반대의 예상도 있습니다. 총선마저 끝난 마당에 윤석열 대통령이 기존 원칙을 고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대통령실은 이날 의대 증원 1년 유예 안에 대해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럼에도 칼자루는 의사들에게 넘어갔다는 게 중론입니다.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대학병원을 지키는 의대 교수들마저 집단사직 및 준법진료 등 기존 투쟁 방식을 고수하면서 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의료 현장도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등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응급의학과 비대위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며 “남아있는 의료진들의 피로와 탈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고 교수들의 업무 단축은 앞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업 거부와 집단휴학에 대응해 개강을 미뤄왔던 각 의대들도 더 이상 학사 일정을 미룰 수만은 없습니다. 경북대와 전북대가 개강했고, 가톨릭대와 전남대는 다음주 개강합니다. 게다가 의대 증원을 반영해 신입생 모집 요강을 반영하려면 이달 중 확정돼야만 합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든 패하든 마무리를 지어야 되는 상황인데, 총선에서 패배하고 나면 의사들이 더 유리한 협상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라며 “(반면) 여당이 승리한다면 자신감을 얻고 윤석열 대통령 스타일대로 의료계를 압박해 그대로 밀어붙일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습니다.
의대정원 확대로 정부와 의사 간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는 8일 서울시내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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