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 주식시장에서 엔비디아가 5% 하락했다며 이번 주 우리 증시를 걱정하는 글이 눈에 띄게 늘었더랬습니다. 엔비디아 덕에 오른 국내 종목이 많고 그 종목들이 지수 상승을 주도했으니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닐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 초반 반도체가 쉬어가며 조정양상이 펼쳐지는군요.
아무리 대단한 기술과 시장 지배력을 가진 기업이라고 해도 1년반도 안돼 주가가 9배나 올랐다면 어느 정도 주가가 하락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데, 이 정도 하락에 호들갑 떠는 것을 보자니 시장이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은 겨울을 막 벗어나 봄이 오길 기다리는 2월 말, 3월 초 딱 요즘 같은 날씨입니다. 그런데 유독 자산시장 일각에선 한여름 땡볕 열기로 타오르고 있어 양극화된 이상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비트코인입니다. 2월부터 그렇게나 엉덩이를 들썩이더니 가뿐하게 7만달러를 넘어 난리가 났습니다. 한화로는 1억원을 돌파했죠. 영국까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젠 비트코인을 자산시장의 한 축에 포함시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트코인에 가려 있던 원조 안전자산 금도 시세를 뽐내는 중입니다. 온스당 22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금과 비트코인의 적정가격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주식처럼 기업 실적이라는 ‘기초’가 없어서 시장 분위기와 참여자들의 매매에 따라 춤을 춥니다. 그러니 누가 얼마까지 오를 거라고 해봤자 그 말엔 신빙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황당하고 대범한 목표치가 나옵니다. 최근 비트코인이 1억달러까지 갈 거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 숫자가 주는 놀라움 때문에 언론이 확대 재생산합니다. 이왕 목표 삼는 것 몇 배 더 높게 지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국내 코스닥 시장에서도 오랫동안 흑자 한번 내본 적 없는 기업들이 10조원 넘는 몸값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주가가 꿈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불과 두어 달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1년여 전쯤엔 2차전지로 타올랐던 시장입니다. 2차전지가 사라진 자리엔 인공지능(AI)이 등장했고 HBM이 선두에 섰습니다. 이들이 물러나면 또 누군가 그 자릴 대신할 겁니다.
소수의 자산에 의해 달아오른 시장인지라 투자자 대다수는 박탈감이 상당합니다. 나만 소외된 느낌. 심해지면 있는 것 없는 것 다 정리해서 따라가고 싶은 욕구가 치솟겠죠.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실행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의 버블이 터지고 새로운 버블이 등장할 겁니다. 주식시장은, 자산시장은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실패를 밟고 성장해 왔습니다.
봄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를 묵묵히 기다린 투자자들이 그 성과를 맛볼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박효신의 야생화처럼 “먼 훗날 너를 데려다줄 그 봄이 오면 그날에 나 피우리라”고 믿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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