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한국 은행들에 있어 기회의 땅입니다. 태국은 아시아에서 경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국가입니다. 인구는 7200만명으로, 국내총생산(GDP)은 5000억달러에 이릅니다. 동남아시아의 맹주이면서 아세안 핵심 국가로, 한국과 수교한 지도 60년이 넘었지요.
태국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국내 기업들이 진출해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활동의 동맥 역할을 하는 한국계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는 현실입니다. KDB산업은행이 사무소 형태로 나가 있는 것이 전부인데요. 전체 금융사로 넓혀봐도 KB국민카드와 삼성생명, 다올투자증권 등 모두 4곳이 제한적 영업을 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지 기업들은 국내에서만큼 자유롭게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 은행이 태국에 진출하지 못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태국의 금융규제는 복잡하고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외국 금융회사의 진출을 허용하되, 은행 영업점 개설이나 자본금 증가, M&A 등에 대해서는 승인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 금융사는 태국 내에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습니다. 또한 태국은 외국인이 기본적으로 49% 이상의 지분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데요. 초과 소유를 위해선 태국 내 기여도 등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사실 이보다 큰 문제는 한국 은행에 대해선 진출 자체를 막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히스토리가 있는데요. 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촉발한 바트화 폭락 당시 한국 금융사들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도 외환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우리 금융사들은 태국의 요청을 거절하고 줄줄이 태국을 떠났습니다. 어쨌든 태국 정부는 이 당시 기억 때문에 한국 은행들에 ‘괘씸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1997년 이후 태국 정권도 여러 차례 교체됐는데요. 그럼에도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은행이 태국에 발을 못 딛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정부의 노력도 소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남방정책이라고 해서 발표만 거창했지, 결국 이런 매듭을 푸는 역할은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태국 진출을 위해 민관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태국의 금융시장 특성과 수요에 맞는 맞춤형 금융서비스를 개발해 태국민들의 만족도를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태국은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금융소외 계층이 많습니다. 태국보다 선진화된 방식으로 농업금융, 소액 금융, 마이크로파이낸스 등의 금융서비스를 갖춘다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태국도 한국 못지않게 디지털 금융이 활발히 이뤄지고 핀테크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태국 현지 핀테크 업체와 합작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카카오뱅크가 태국 가상은행 진출을 위해 현지 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태국은 자존심이 센 나라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부침은 있었지만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통치를 받지 않았다는 점은 태국민들의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이런 문화적 이해 속에서 동반자로서 협력 의지를 확고히 한다면 차가웠던 태국의 마음도 어느 정도 녹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의중 금융증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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