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기차 보조금 지침 유감
2024-02-14 06:00:00 2024-02-14 06:00:00
환경부의 2024년 전기차 보조금 지침은 명백하게 중국산 LFP 배터리와 미국 자동차 회사인 테슬라를 겨냥하고 있다. 새로운 지침으로 보조금을 최대한 받는 자동차 메이커는 공교롭게도 국내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들의 전기차들이다. 지침은 복잡하고 옵션도 많아서 일반 소비자들로는 계산이나 판단이 쉽지 않다. 특히 소수점 4자리까지 내려가는 주행거리 계수 산식에 대해서는 계산 근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배터리의 잔존 유가금속 가치를 가지고 보조금을 차등하는 것에 대해서도 특정 회사의 특정 모델을 겨냥했다는 인상을 준다. 테슬라가 2023년 한국에서 1만6641대의 차량을 팔면서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LFP 배터리를 채택한 모델 Y로 인기를 끌었는데, 서울 기준 보조금은 850만원 수준이었다. 2024년의 새로운 지침이 적용되면 보조금은 작년 대비 600만원이 줄어들어 현대기아차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혹자는 중국, 미국, 유럽 모두가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선 상황에서 자국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 무슨 문제이며, 재활용도 어렵고 가치도 떨어지며 중국이 시장을 장악한 LFP 배터리에 세금을 쓰면 안되는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고, 과거 중국 전기버스 배터리에서의 노골적인 차별도 있었고 미국IRA 법안으로 전기차 수출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80% 가 해외시장에서 나오며, 국가 경제가 첨단 제품의 개발과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가 이러한 특정 기업 밀어주기 정책을 펴는 게 맞는지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일에는 명분이 중요하다. 안 그래도 미중 갈등 속에서 안보와 경제의 균형감각이 필요한데 환경부의 보조금 지침의 명분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2024년 지침의 방향은 명확하다. 고밀도 대용량 NCM 배터리를 장착해 주행거리가 길고, 급속 충전이 되며, 전국에 충전기를 많이 보급하고, 표준 배터리 진단 장비를 구비하고, 전국의 직영 서비스 센터를 확충한 회사의 전기차에 보조금을 몰아주겠다는 것이다. 저런 방향으로의 환경 보조금 투입이 환경부라는 조직이 추구해야 하는 국가 환경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까?
 
출퇴근 시간 길을 가득 매우는 차량들의 다수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혼자 차를 몰고 집과 회사를 오가는 차들이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도 출퇴근 시간 차들이 밀물과 썰물 빠지듯 출퇴근 시간이면 나가고 들어오는데, 대형SUV나 대형차를 부부가 각각 몰고 다니는 경우도 자주 본다. 2022년말 기준 대한민국 인구는 5200만 명이고 등록 자가용이 2370만 대다. 이들 등록 차량들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36km 수준이며, 승용차의 하루 평균 거리 주행거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 차를 두 대 소유하는게 특이하지 않은 상황이고, 승용차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36km면,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출퇴근/시내 주행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비싸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는 전기차가 필요하다.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해가면서 보급을 촉진하는 이유가 내연기관 자동차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과 배기가스 오염을 줄이기 위함이라면, 그에 맞는 명분과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차량 제조과정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은 더 많은데 주로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의 에너지 투입에 기인한다.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에 대해 에너지 밀도와 잔존 유가 금속의 가치로 크게 차등 지원하면서, 두 배터리의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평가했는지 환경부에게 묻고 싶다.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유가 금속을 재활용하는 하는 가치가 크다고 해서 애초 광물들을 채굴하여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정제와 가공 과정에서 들어간 에너지와 수반된 온실가스 배출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급속충전이 잘 되는 배터리는 필연적으로 화재 위험이 높다. 현대기아의 NCM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들이 단순 충돌 사고 후 바로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렇게 보조금을 몰아주는 것이 기술 개선에 얼마나 자극이 될까? 또한 배터리 제조와 재활용 기술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희소금속이나 유기금속을 안 쓰거나 덜 쓰는 배터리, 수명이 긴 배터리, 화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한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에너지 투입이 적은 배터리의 개발과 보급을 촉진해서 싸게 보급하는 것이 환경적 편익을 극대화 하는 정책 방향일 것이다.
 
환경 편익에 대한 아쉬움와 함께 이번 환경부의 조치가 과연 현대기아차에 유리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하여 수출하고 있다. 23년 초 IRA 보조금을 못 받는 문제에 직면했지만, 정부까지 나선 노력 끝에 법인용 렌탈, 리스 차량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받는 예외를 인정받았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는 23년 미국에서 약 10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테슬라는 22년에는 가격이 대폭 올라 판매가 줄었지만, 중국 공장에서 LFP 배터리를 장착한 모델을 출시해 23년에는 국내에서 1만6000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의 보조금 지침이 IRA의 차별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라면 향후 누가 경제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지는 명확하다. 장기적으로 대중 수출 감소를 대미 수출 증가로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자국 우선주의로 인한 통상 압박이나 보복 조치의 빌미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매출의 80%가 발생하는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생명인 자동차 대기업에게 가장 유리하게끔 매년 변경되는 지침이 자칫 통상 마찰로 이어지거나, 이들 기업들이 특정 배터리 기술과 특정 모델에만 안주하게 만들지나 않을지 우려된다.
 
환경부의 향후 전기차 보조금 지침은 명분과 실리 측면에서 보다 신중하며, 더 많은 토론과 검토를 통해 제정되기를 기대한다.
 
권효재 COR 페북그룹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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