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설치는 법률의 취지에 완벽히 반한다. 1990년대 초반 정부조직법은 행안부(당시 내무부) 장관이 치안 사무에서 손을 떼도록 개정되었고, 경찰법에 따르면 경찰 사무는 경찰위원회 소관이며 행안부 장관은 측면 개입 정도만 한다. 행안부는 법률 개정 없이 경찰국을 설치해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쥐었고, 수많은 경찰관이 반대에 나섰다. 류삼영 당시 총경은 전국경찰서장회의를 주도했다.
경찰을 그만둔 류삼영 전 총경이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되는 것을 보며 나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에 항의했던 이복현 당시 부장검사를 떠올렸었다. 그는 검찰을 떠나자마자 금융감독원장이 되어 스스로 명분을 퇴색시켰다. 류 전 총경도 “정치하려고 저랬구나”라는 비아냥을 피할 수 없다.
검수완박이나 행안부 경찰국 설치나 당시 다수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우세했다. 당파 구도에 넘어가지 않고 집권세력의 무리수 내지 횡포로 인식한 시민들이 있어서였다. 반대 여론이 폭넓었기 때문에 들고 일어난 검찰과 경찰의 구성원들도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난에서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때의 궐기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정 정치세력의 일원이 돼버린 것은 지지해 준 시민들과 공무원 동료들을 저버리는 일이다.
류삼영 전 총경이 윤석열 정권과 싸우다 민주당으로 간 사례라면, 조명현 씨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문제를 제기했다가 국민의힘에 가까워진 사례다.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청 비서실에서 일했던 조씨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법인카드 유용 문제를 폭로했다. 조씨가 정치에 입문하다는 소식은 없고 그가 국민의힘 당원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북콘서트는 아예 국민의힘 지도부가 주최했다. 물론 어느 당과 손잡았든 조씨의 폭로는 정직하고 의로웠다. 이 대표측도 법인카드 유용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반박은 물론이고 언급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조씨는 명실상부한 공익제보자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손을 잡는 순간 그의 길은 당파 구도에 빛이 바랜다.
국민의힘과의 제휴는 전략적으로도 패착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이 대표 측이 법인카드로 샀다는) '일제 샴푸' 타령에 꽂혀 있다. 필자가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경기도 비서실 업무분장표에 따르면, 조씨의 공식 업무는 ‘유관기관•단체 협력 관리‘였다. 조씨는 저서에서 자신이 비서실 의전팀 내 '사모님팀‘에 있었다고 밝혔다. 명목상의 담당 업무와 실제로 수행한 일이 다르므로 경기도청이 조씨에게 준 급여만큼 이 대표는 배임이나 국고손실 혐의를 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은 이런 사항을 챙기고 있는가. 제보자를 데리고 시간만 허비하며 즐기는 것은 아닌가.
공익제보자가 당파 구도에 갇히지 않고 현명하게 돌파한 사례로는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 아들의 특혜 휴가 의혹을 제기한 ‘당직 사병’이 있다. 그의 조력자는 군복무 중 공익제보자가 됐던 김영수 씨였다. 공익제보자는 독립적인 시민운동이나 언론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거대정당에 맞서다 또 다른 거대정당에 의탁하고픈 유혹을 떨쳐야 한다. 공익제보자뿐 아니다. 문제를 제기를 했다가 미운털이 박힌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싸워야 자신의 맥락을 지키고 더 넓은 지지도 획득할 수 있다.
물론 류삼영 전 총경도 어느 정도 내몰린 측면이 있었고, 조명현 씨는 그보다도 훨씬 더 마음고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애초 정치를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었다면) 그들이 특정당파로 들어가거나 기울어진 데는 시민사회의 책임이 매우 크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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