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들)①사지로 내몰린 '하청 노동자'
'중대재해처벌 도입 700일' 맞아 죽음의 외주화 실태 특별진단
노동자 459명 설문조사 실시…중대재해처벌법 체감효과 '낮아'
2023-12-27 06:00:00 2023-12-27 06: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고 김용균씨 사망 이후 '죽음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음에도 노동자, 특히 하청 노동자가 사지로 내몰리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의 안전 조치를 강화하고 산업재해가 생기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벌하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부터 시행 중이지만, 출근 후 집에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들은 줄지 않고 있는 겁니다.
 
27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2022년 1월27일)된 지 700일을 맞았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원청기업의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입니다. 그동안 원청은 비용절감을 위해 위험한 업무를 하청에 떠넘기다가, 막상 하청에서 사망자가 생기면 외면했습니다. 2016년 5월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죽은 '김군', 2018년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 김용균씨는 모두 하청 노동자였습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실제 적용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법 취지를 무색케 합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11월 기준 그동안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모두 28건입니다. 이 중 재판에 넘겨져 1심 판결이 나온 건 8건뿐입니다. 8건 중 실형은 단 1건(한국제강 대표이사, 징역 1년 선고에 법정구속)에 그쳤습니다. 나머지 7건은 집행유예입니다. 집행유예를 받은 일부 사업주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까지 제기했습니다. 최정학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을 통해 사고를 예방하자는 취지인데, 실제 처벌 사례가 거의 없다"며 "경영자에겐 다소 관대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약자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법원마저 원청에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면서 죽음의 외주화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SPC 계열 공장에선 지난해 10월15일, 올해 8월10일 연이어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뉴스토마토>가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한 달 간 전국 노동자 4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에 참여한 노동자들 상당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삶의 질이 개선됐다'는 응답은 17.65%(81명), '현장에서 재해가 감소했다'는 답변은 18.52%(85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이 일터로 갔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데에는 정부와 정치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노동자 50명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건설공사에 대해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간 유예하다가 내년 1월27일부터 확대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계를 중심으로 적용을 더 유예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정부와 국민의힘은 추가 유예 추진 방침을 밝힌 상태입니다. 민주당도 내년 총선이 임박하면서 중소기업계의 표심을 의식, 논의에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특히 정부는 산재로 사망자가 발생한 기업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채 숨기기에만 급급합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단체의 요청과 공익적 목적에 따라 산재사고 사망자료를 발표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중입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2022년과 2023년 10월 기준 산재사고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부터 2023년 10월까지 산재 사망사고가 일어난 기업들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10년간 대우건설에서만 54명이 사망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어 △포스코이앤씨(48명) △한익스프레스(39명) △DL이앤씨(38명) △GS건설(36명) 순으로 사망자가 많았습니다.  
 
10월20일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서 연 ‘SPL평택공장 중대재해 산재 사망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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