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 군사위성과 한반도 안보 위험의 이중성
2023-12-20 06:00:00 2023-12-20 06:00:00
북한이 지난 11월 21일 쏘아 올린 만경리 1호 군사 정찰위성이 궤도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촬영 사진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괌 앤더슨 미군기지와 미 해군 항공모함 ‘칼빈슨’ 함, 하와이 진주만 해군기지에 대한 정찰 사진을 확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의 위성 개발이 기존의 핵·미사일 능력과 결합하여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점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북한의 군사위성 보유의 군사적 영향과 한반도에 주는 함의는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강력한 주먹(핵·미사일) 외에 예리한 눈(군사위성)을 보유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상반된 이중적 함의를 내포한다. 감시정찰 능력 제고가 공세적 군사전략을 뒷받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이로 인한 상황인식 능력의 향상이 조급한 과잉 대응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모두가 지적하듯이 북한이 ‘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주먹’을 보다 정확하게 휘두를 수 있음을 뜻한다. 북한의 핵 태세는 미 본토를 향한 ‘응징적 억제’와 한반도 주변에 대한 ‘거부적 억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즉, 대륙간탄도탄미사일(ICBM)로 미국의 대도시 타격을 위협함으로써 미국의 적대행위를 억제하는 한편, 유사시 한반도, 일본 등을 겨냥한 전술핵 실전 사용 역량을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군사개입과 한미연합군의 군사적 승리를 거부하려는 것이 북한의 의도다. 핵 태세 유형에서는 전자를 ‘확증 보복’(assured retaliation) 태세, 후자를 ‘비대칭 확전’(asymmetric escalation) 태세라고 부른다. 군사위성은 바로 이 비대칭 확전 태세가 요구하는 역량이다. 확증 보복은 대도시를 겨냥한 대량 살상 위협으로 충분하지만, 전술적 핵 사용은 군사 표적에 대한 정밀한 타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태세가 비대칭 확전으로 옮겨 가면서 북한 핵 사용 문턱이 낮아지고 있는데, 군사위성이 이를 가능케 할 경우 안보적 위험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반면, 북한 군사위성은 의도치 않은 순기능도 발휘할 수 있는데, 바로 핵 위기 안정성 효과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은 기회주의적인 선제 핵 사용으로 시작될 수도 있지만, 두려움과 압박 하의 절망적 선택으로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 즉, 재래식 전쟁 와중에 북한이 자신의 핵전력이 무력화될 위험이 있거나 정권 생존이 경각에 처해 있다고 판단되면 자살적 선택에 내몰리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핵전략 이론에서 ‘use it or lose it’ 딜레마로 부르는 현상이다. 북한이 작년 9월 공개한 핵 무력 법령에도 이런 논리가 반영되어 있다. 법령엔 핵무기가 사용되는 조건을 밝히고 있는데, 그중 세 가지는 ① 북한에 대한 WMD 공격 감행 또는 임박, ②국가지도부에 대한 핵·비핵 공격 감행 또는 임박, ③ 국가 중요 전략 대상에 대한 치명적 공격 감행 또는 임박 등이다. 여기서 핵심은 ‘임박’ 판단만으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공격 임박 판단으로 핵 버튼을 눌러야 하는 압박감은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미소 양국은 ‘경고 즉시 발사’(LOW: Launch On Warning)라는 태세를 고안해 낸 바 있다. 상대의 핵미사일이 날아오고 있다는 것이 조기경보 레이더를 통해 탐지되면, 실제 영토에 떨어지거나 확인되기 전에 핵 대응이 시작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만큼 미소 모두 선제공격을 당해 자신의 핵전력이 일시에 제거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내포된 위기 불안정성 측면이다. 임박 판단만으로 핵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오판에 의한 핵전쟁의 위험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핵 지휘통제(NC2) 시스템은 미국과 소련처럼 정교하고 안정된 수준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더욱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강력한 펀치만 있지 거의 까막눈 수준의 전장 인식 능력을 갖고 있는 북한이 정확하고 신중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바로 이 점에서 군사위성이 제공하는 상황인식 능력이 북한의 성급한 결정을 다소나마 제어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순기능이 북한 군사위성의 부정적 함의를 상쇄한다는 뜻은 아니다. 군사위성의 자제효과는 위기 초반에만 작동할 것이고, 상황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북한의 전쟁 머신으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북한 위성 자체의 군사적 의미보다 이와 연관된 한반도 안보 위험의 이중성에 대한 각성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2차 세계대전이나 6.25 전쟁처럼 억제의 실패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1차 세계대전처럼 두려움과 오판에 의한 위기관리 실패로 촉발될 수도 있다. 군사위성 발사를 지켜보며 북핵에 대한 실효적 억제와 한반도 위기 안정성이라는 이중적 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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