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토요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 날은 ‘할로윈 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장소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의 서편 골목. 그 날 그 곳에서 20대 청년 106명을 포함한 159명이 사망했다. 그것도 길을 걸어가다가, 영문도 모른 채. 하늘의 별이 된 사람도, 남은 유족도, 그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우리 국민도, 아직까지 그 날 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1년이 지난 2023년 10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기억, 추모, 진실을 향한 다짐'이라는 제목으로 추모제가 열렸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의 요구는 간명하고 간단했다. 요약하면, ‘참사의 진상 규명’, 그것이 전부였다. 5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모여 추모했고, 해외 사절들도 추모제에 참석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다. ‘정치 집회’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 함께 서울 성북구 교회에서 추도 예배를 했고, 대통령의 참모들 앞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지난해 오늘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미국 시간으로 10월 29일 미국 존 F. 케네디 재단이 수여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 상'을 기시다 일본 총리와 공동 수상했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을 존경해왔다. 일본 총리와 함께 이 상을 수상하게 돼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고 말하면서 시민들의 추도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기쁘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용기있는 사람들 상’을 수상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를 조직한다. 국가는 국가 내에서 생명 활동을 벌이는 사람들(국민)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일정한 질서를 강제한다. 국민은 국가의 강제력에 복종한다. 국민의 생명 활동에 이익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고, 국가에게 국민의 복종을 강제할 정당성이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강제력은 국가 스스로가 그 질서를 깨뜨리지 않을 때만 성립된다. 또 국가가 모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경우에만 국가 권력은 강제력을 가질 수 있다. 국가가 먼저 그 질서를 깨뜨리면, 국민은 국가 내에서의 활동이 자신의 생명 활동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혹이라도 국민 중 누군가가 부당하게 생명을 부인당하는 경우를 목도하게 되면, 국민들은 생명 활동의 위협을 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더 이상 국가가 국민의 복종을 강제할 권위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에 강제적 권한을 부여하지 않게 된다.
대통령은 국가 권력을 국민을 향하도록 행사해야 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국민이 죽어가는 사태가 벌어져도 수수방관하고 있거나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한다면, 아니 그 원인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국가가 국가의 질서를 스스로 깨뜨렸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국가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용기있는 사람들 상’을 받았다고 대통령을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미국 존 F. 케네디 재단으로부터 상을 받았다고 윤 대통령을 케네디 대통령과 같은 대통령으로 여기지 않는다. 반대로, 대통령이 ‘가장 슬픈 날’이라고 말하면서도 추모제에도 오지 못하고 유가족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작은 용기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국민들은 우리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제대로 유지될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용기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데, 국민의 힘을 모아 부강한 국가의 길을 닦는데, 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켜 우리 지구촌 인류가 보다 평화롭게 함께 생존하는 방법을 찾는데, 쏟아야 한다. 케네디가 말한 ‘지도자의 용기’는 이런 의미일게다. 대통령의 용기는, 우리 국민의 미래를 향해 원망(遠望, 멀리 바라봄)할 때, 역사를 위해 우리 국민의 원망(怨望)을 풀 때, 우리 대한민국을 강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깊은 원망(願望)을 가질 때, 그 때 내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강력히 원망(願望)한다.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마음 속에서 지울 수 없는 2023년 10월 29일, 그 날 그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째서 사람이 길을 걸어가다가 사망할 수 있는지, 어째서 우리나라가 이런 참사를 외면하고 진실을 숨기는 나라가 되었는지,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우리 국민은 진정으로 알고 싶다. 오죽하면 유족의 소망이 ‘참사의 진상 규명’뿐이겠는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윤 대통령을 깊이 원망(怨望)하고 있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원망(願望)을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은 용기를 내야 한다. 길을 걸어가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별들의 원망(怨望)을 푸는데 용기를 내야 한다. 살아서 슬픈 우리 유족의 한(恨), 슬프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족의 마음을 달래야 한다. 이것도 하지 않는 국가는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
유족들이 말한다. ‘그 날 국가는 없었다’고. 대통령은 최소한의 용기를 내기 바란다. 대통령은 유족의 이 말을 몸과 마음에 새기기 바란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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