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잡음으로 인해 신탁방식 도시정비 자체의 신뢰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2016년 제도가 도입됐는데요. 초기 사업 자금을 빨리 조달할 수 있고 불필요한 분쟁도 줄여 속도전에 유리한 탓에 올해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만큼이나 신탁사의 정비사업 참여 소식이 줄을 이었죠.
최근 문제가 된 단지는 여의도 한양아파트와 목동신시가지7단지입니다.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지난달 29일 시공사 선정총회가 예정돼 있었는데요. 서울시가 시공사 선정과정에 위법사항이 있다고 보고 시정지시를 내리면서 총회가 취소됐습니다. 한양아파트 시행을 맡은 신탁사는 KB부동산신탁입니다. 서울시는 KB신탁 등이 현행 정비계획을 따르지 않았고 소유주 동의를 얻지 못한 면적을 토대로 시공사 선정을 진행한 점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KB신탁이 권한이 없는 부지를 사업 면적에 포함했다고 본 것인데요. KB신탁은 지침 위반은 없지만 수사 의뢰 등을 하면 사업이 장기간 늦춰질 수 있어 권고를 수용했다고 밝혔죠. 그러나 업계에선 신탁사의 정비사업 수행역량 부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목동신시가지7단지에서도 최근 잡음이 발생했습니다. 코람코자산신탁은 지난달 24일 목동7단지 정비사업 추진위원회(추진위)와 업무협약을 맺고 해당 사업의 예비신탁사로 지정됐다고 밝혔는데요. 이틑날인 25일, 목동7단지 재건축 준비위원회(준비위)가 입장문을 통해 '사업 방식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준비위 측이 문제로 삼는 것은 신탁방식을 추진한 주민단체 추진위가 소유주에게 신탁 또는 조합방식 진행 여부를 묻지 않고 입찰에 나선 점입니다. 통상 재건축 초기 단계에는 주민 대표 단체가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인데요. 목동7단지도 추진위원회 승인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는 어떠한 주민단체도 대표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갈등이 쉽게 풀리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신탁방식 정비사업은 조합이 일부 수수료를 지급하고 사업 진행 전반에 걸쳐 전문 신탁사가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신탁방식은 신탁회사의 자금조달, 투명성,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정부도 신탁방식에 대한 규제를 허무는 추세죠. 지난 7월 국회를 통과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 따르면 신탁사 등이 시행하는 정비사업은 전문성을 고려해 정비구역 지정과 동시에 사업시행자를 지정하고 정비계획과 사업 시행계획을 통합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지난 9.26대책에서 토지면적 3분의 1 이상을 신탁(등기이전)해야 하는 요건을 없애 규제 문턱을 낮췄죠.
그러나 시장에선 신탁방식 재건축 사업의 앞날을 마냥 장밋빛은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높은 수수료와 조합원 이해도 부족 등 걸림돌이 만만찮기 때문인데요. 신탁사를 사업시행자·대행자로 지정하면 총 분양대금(일반분양 수입)의 2~4% 수준의 수수료가 발생합니다. 사업 규모가 큰 서울 재건축 단지는 수수료만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이 비용은 결국 조합원들의 분담금으로 고스란히 돌아가게 됩니다.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현재까지 신탁방식으로 사업이 성공한 단지는 대전 동구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와 경기 안양시 '한양수자인 평촌리버뷰' 정도입니다. ?신탁사는 건설사 정비사업 영업·관리 인력을 충원해 전문가를 늘리고 있는데 인력의 숙련도 편차가 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신탁방식 재건축을 추진하기에 앞서 득과 실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건데요. 따라서 아파트 소유자들은 각자 사업지에 맞게 장점과 위험 여부를 꼼꼼하게 분석해 주체적으로 사업 방식을 결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강영관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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