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은 다양한 종목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퇴근 후 소파에 편히 앉아 이들의 경기를 시청하면서, 나는 스포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기운을 여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과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메달밭 역할을 하던 유도와 레슬링 같은 종목의 쇠퇴가 뚜렷했다. 반면, 엘리트 선수 육성 과정이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체육을 통해 선수들이 입문하고 성장하는 주짓수와 같은 종목에서의 활약은 매우 주목할 만했다.
수영과 같은 종목에서 많은 뛰어난 선수들이 등장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달성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에서 ‘생존수영’을 가르치게 되면서, 수영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된 것이 이러한 성과의 배경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과거의 헝그리 정신 신화는 점점 저물고 있으며, 생활체육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세대의 선수들이 자라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시안게임과 시기적으로 겹쳐 상에 대한 갈증이 덜했던 탓인지 올해의 노벨상 시즌은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갔다.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면 흔히 보이던 추측성 설레발 기사들도 다소 적게 접한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 수상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런 국제적인 상과 명예에 대한 열망이 여전히 크다. 이는 과거에 올림픽과 같은 행사에서 선수의 성적과 국가의 명예를 과도하게 동일시하며 메달에 집착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이러한 성취는 국가의 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지만, 동시에 학문과 연구의 본질적 가치를 왜곡할 위험도 안고 있다.
198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노벨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표현한 적이 있다. "노벨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X, Y, Z를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한다면, 그렇게 되는 것이겠죠. 하지만 스웨덴 아카데미의 누군가가 내 작업이 상을 받을 만큼 고상하다고 결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상은 이미 받았어요. 상은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 발견의 흥분, 다른 사람들이 내 작업을 사용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거예요."
파인만이 많은 연구자들에게 영감을 준 분야이기도 한 양자컴퓨터와 관련된 소식들을 요즘 자주 접할 수 있다. 많은 정치인이 양자 기술의 육성을 강조하며, 관련 분야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다. 그러나 유행을 선도하는 기술은 끊임없이 변하는 반면, 모든 기술의 근원은 발견하는 즐거움에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양자컴퓨터를 가능케 하는 양자이론의 발전 역시 궁극적으로는 파인만이 말하는 발견하는 즐거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20세기 초, 물리학자들은 기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빛과 에너지에 관련된 현상들을 이해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양자이론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는 상을 받는 목적이나 특정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과 탐구의 즐거움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한국에서 엘리트 체육과 메달 획득에 대한 과도한 편향은 오랜 지속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변화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의 성숙과 함께 생활체육이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노벨상 타령도 언젠가는 잦아들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발견의 즐거움과 같은 본질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이끌 것이라 기대한다.
이철희 고등과학원 수학난제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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