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 아니다."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행정구역인 용산구의 재난관리 책임기관장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법정에서 이같이 항변했다고 합니다. 사회나 언론 등이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본인이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겠냐며 억울해했다고 하는데요. 박 청장을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사회의 재난과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책임자와 치안 책임자들은 '기관장'이라는 직급이 무색하리만큼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에 대한 처벌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기각됐으며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 청장은 지난 1월 기소된 후 모두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내 치안과 경비 책임자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법 증축으로 적발된 해밀톤 호텔의 대표에 대한 최종 선고만 앞둔 상황입니다. 25일과 27일 각각 이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차례로 국민과 유족에 대해 송구하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을 담은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만 봐도 정부 차원의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 의지와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 사이 이태원 참사는 이해하기 힘들고, 안타깝고, 비극적이라, 언급하기 꺼려지고, 불편한 사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고나 재난이 일어나도 고위급 인사나 해당 기관의 장은 책임지지 않고 처벌받지 않는다는 교훈이 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용산구청장과 경찰서장,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누구하나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위정자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치안과 행정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참사가 아닌, 핼러윈 파티를 즐기러 나간 피해자의 '잘못'으로 치부하는 듯한 시선이 적지 않다는 점도 비극 중 하나입니다.
실책을 비난하고, 수치심을 주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듯, 한국 정부를 구성하는 기관장들도 선진국 수준에 걸맞은 성숙한 책임의식을 갖췄으면 합니다. 유족들을 정치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1년 전과 똑같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진실 규명, 책임 규명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 규명에 대한 동력이 떨어지면서 결국 흐지부지 돼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년 이맘때에는 '책임 규명'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같은 1차원적 논의를 마무리하고, 사회 재난 방지와 안전시스템 정착 등 '이태원 참사 그 이후'에 대해 고민하고 머리를 맞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보라 중기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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