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여야관계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사태를 전후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 위기’처럼 보인다. 공교롭게도 여야 수뇌부 모두는 민주주의 위기를 말하면서 그 책임을 상대진영의 우파 파시즘 탓이나 좌파 포퓰리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여야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부터 맞붙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법치·상식·보편적 가치의 위험선을 다 넘었다”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의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맞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극렬 지지층에 기댄 팬덤정치와 이로 인한 극단적 대결 구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반론했다.
정말 민주주의의 위기라면 그 원인은 뭘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민주주의 위기는 democracy의 번역어인 ‘민주정이라는 정체 그 자체의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민주정체’가 진영대결과 정치양극화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타락현상인 좌우 포퓰리즘과 선동정치로 위기를 맞는 것은 필연적이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 폴리비오스, 마키아벨리가 말한 ‘정체순환론’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정체는 ‘완벽한 정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정체는 republic이라는 ‘공화정체’에 비해 불안정한 체제이다. 민주정체는 진보, 보수 중 누가 집권하든 ‘다수파의 전횡’으로 인해 소수파와의 불화와 정쟁을 피할 수 없다. 민주정체는 포퓰리즘과 선동정치로 무장한 민중독재자의 등장으로 인해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민중선동가에 맞서는 군주형 리더를 불러들여서 양자의 대결을 만든다.
민중선동가와 군주형 리더는 민주정이 초래하는 다수파와 소수파간의 정쟁과 불화를 지켜보다가 무정부적 혼란을 기회로 삼아서 권력을 장악하고 민주정체의 핵심인 ‘다수결주의’를 부정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정체순환론의 관점으로 우리 정치과정을 보면 설명력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맞서 집권에 성공한 문재인 대통령의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조국사태’로 역풍을 맞아서 경쟁자였던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후보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지난 대선에서 윤 후보는 포퓰리즘과 선동정치로 무장한 이 후보를 간신히 이겼으나 완전히 이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임에도 공화정 리더십이 아니라 군주정 리더십으로 야당을 대하는 형국이다. 중우정과 군주정은 서로 경쟁하지만 모두 ‘불안정한 정치체제’이다. 중우정에서 등장하는 민중선동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힘을 쓰다보면 군주정은 ‘참주정’(tyranny)으로 타락하게 된다.
현재 우리 국호가 민주공화국 임에도 군주형 리더나 민중선동가가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짜 공화국이 아니고 무늬만 공화국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진짜 공화국을 구현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민주정과 정체순환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혼합정체’로 번역되는 공화정의 길을 가는 게 최선이다. 공화정의 정신인 공화주의는 비지배적 자유와 법치주의 및 숙의를 통해 다수파와 소수파의 불화를 줄이고 공공선을 추구한다. 현재 민주공화국의 국정운영을 민주정과 중우정 및 군주정 방식으로 운영하지 말고, 공존과 숙의라는 공화주의적 방식으로 운영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