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세계>에는 조폭 기업 ‘골드문’이 나온다. 본디 경찰인 이자성(이정재)이 침투한 그 기업이다. 골드문은 나날이 커져 괴물이 되어가고, 경찰 간부들은 이 회사를 아예 접수하기로 한다. 결탁할 기업 내부 인사를 물색한 끝에 수사기획과장 강형철(최민식)은 골드문의 부회장 장수기(최일화)를 지목한다. 장수기는 명목상 2인자지만 후배인 정청(황정민)과 이중구(박성웅)에게 밀려난 인물이다. 상급자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한다. 부국장 고병엽(주진모)은 장수기를 두고 “수술 당해 지금은 거의 은퇴상태”라고 평가한다. ‘수술’은 한국 영화에서 종종 쓰이던 단어인데 이 영화에는 더 압도적인 표현이 나온다. 국장 최승일(박상규)의 말, “걘 진즉에 이중구
·정청이한테 인수분해 당했다며?”
<쌍방울은 이화영이 했고 대장동은 유동규가 했고 법인카드 유용은 배 모씨가 했고 성남FC는 본인이 한 것이기도 하고 안 한 것이기도 하고 백현동은 박근혜 정부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그간 해온 주장들을 수용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이 대표가 사법적으로 무죄고 그의 주장이 맞는다면, 그도 언론 보도와 검경 수사를 통해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 안팎에서 ‘인수분해’ 당했다는 진실 말이다.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은 사실이고, 이 기업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정경유착도 사실이다. 이 대표가 관여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경기도는 ‘플랫폼’으로 이용당한 것이다. 또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 대표의 설명을 따르자면 그 사업은 ‘수박’이라 평할 수 있다. 그는 연루자들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인사가 있다는 이유로 대장동 게이트를 ’국민의힘 게이트‘라고 규정했었다. 그런데 이재명 성남시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초과이익환수 조항을 집어넣도록 지휘하지 않았다. 공공 임대주택 확보를 저버리고 대신 받은 현금을 놓고 “단군 이래 최대의 공익환수”라고 선전도 했다. 빨간 사업을 푸르게 포장했으니 수박이다.
지자체에 단체장 배우자를 수행하는 직책은 없다. 이 대표의 측근 배 모씨는 이 대표의 배우자를 수행하며 법인카드를 유용했다. 필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해보니 배 모씨는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총무과 소속도 별정직도 아니었다. 이 대표는 배 모씨의 소속 부서와 담당 업무가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성남FC 의혹에 대한 설명도 일관되지 않는다. ’성남시의 인허가‘와 ’해당 기업들의 성남FC 광고비 집행‘이 연관을 가진다면 이는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직결된다. ‘전 이재명’은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고, ‘현 이재명’은 이재명1과 이재명2로 갈려 ‘연관이 없었다’, ’연관이 있었다 해도 시민에게 이익이었다’고 한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방안에 반발해 단식농성을 했던 이 대표는, 결정권이 성남시에 있는 백현동 개발에 대해선 박 정부 탓을 하고 있다. 박 정부가 당시 백현동 등 공공기관 옛 부지의 매각을 원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은 협조요청일 뿐이었고 법에 따른 조치도 아니었다. 부지용도가 자연녹지에서 준주거녹지로 한꺼번에 4계단 도약한 것도, 50m 높이 옹벽이 들어선 것도, 유례 없는 부조리이며 오롯이 이재명 성남시의 책임이다.
‘진보’나 ‘개혁’은커녕 ‘민주’와 ‘상식’도 찾아볼 수 없는 사업들과 사건들을 두고, 이 대표는 자신이 주도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그럼 이재명 행정과 이재명 정치에서 이재명은 무엇이었나. 이 대표가 사법적으로 무죄라 해도 이 주제는 건너뛸 수 없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