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나 비리가 아직도 여러 공공기관에 있겠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예로 든다. ‘순살 아파트’. LH가 인천 검단지구에 짓는 아파트에서 철근이 규정보다 덜 들어가 입주 직전 무너져내렸다. 부랴부랴 전수조사에 나선 뒤, “동일 공법이 전국 15곳에서 진행중”이라고 발표했다. 며칠 뒤 LH 사장이 “재조사한다. 전수조사 때 빠진 곳이 있었다”고 밝힌다. 도대체 LH 수준이 어떻기에 사업장 숫자도 제대로 세지 못하는가. 민주당 김수흥의원실 국정감사자료를 보니 LH 임대아파트 중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가 무려 41%다. 열 채 중 네 채다. 화재에 어떻게 초동대처가 되겠는가.
묻는다.
보수정당 때건 진보 쪽 정당 때건 간에 왜 LH 하나 제대로 못 뜯어고치는가. ‘22년 대통령선거를 한 해 앞두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두 도시 시장들의 성범죄의혹이 보선 원인이었는데, 선거결과를 판가름지은 건 성범죄가 아니었다. LH 전-현직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투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당시 집권당이 참패했다.
LH는 토지수용-조성과 아파트건설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이다. 토지수용권까지 있었으니 그 위세가 인허가권 가진 공무원보다 더 등등했다. 건설업 특유의 카르텔구조까지 결합되면서 수 십년간 부패먹이사슬을 철옹성처럼 구축해왔고, 구조적 부패와 독직 사건이 잇달았지만 ‘개인적 일탈’이라며 꼬리자르기로 버텨왔다. 역대 정부는 LH 하나 제대로 개혁해내지 못하면서 무슨 국가개조며. 적폐청산이나 비정상의 정상화이고, 상식과 법치가 통하는 공정사회를 만든다는 말인가. 입주 직전에 무너졌기에 망정이지 사람이 들어가 살다가 주저앉았다면 어떤 참사가 일어났겠는가. 직원들 신도시 땅투기가 드러나자 어느 LH직원은 블라인드사이트에 “투기가 아니라 투자다. 그건 우리 회사의 복지”라고 썼다. 국민에 대한 조롱을 넘어 도전이다. 이게 세금 들어가는 공공기관 직원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LH퇴직자에 대한 전관예우와 짬짜미는 더 심각하다. “LH퇴직자 중 극소수를 빼면 다 관련 회사에 가있다”. 오죽하면 현 LH 사장이 이렇게 말하겠는가.
아파트 당첨도 힘들지만 운 좋게 분양받고 나면 집값 마련하느라 허리 졸라매면서도 새 집 들어갈 꿈으로 버티는데, LH직원들은 억대 연봉에 쫓겨날 걱정 없이 정년 다 채우고 나와서는 전관예우받아가며 철근 빼먹은 순살아파트를 눈감아준다? 생명을 담보로 잡은 범죄다. 그러고도 연말이면 경영평가 결과 무슨 등급 받았다며 플랭카드 내걸고 수 억원대 성과급 잔치 벌인다. 그거 다 세금이다. 이게 공정이고 상식인가. 정부와 검찰은 뭐하는가.
윤 대통령은 건설현장 비리 척결하라면서 ‘건폭(건설현장 폭력)’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수술을 주문했다. LH직원들 투기나, 퇴직자들이 현직 후배 직원들과의 짬짜미를 통해 저지르는 비리보다 더 심각하고 위험한 건폭이 어디 있는가. 구조적 비리는 ‘해체 불사’라는 각오와 문제의식 없는 사후 처벌만으로는 뿌리뽑지 못한다. 행정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공공기관을 뜯어고치지 못하면 무능한 정부거나, 서슬 퍼런 대통령의 령(令)이 먹히지 않는다는 증거다. 공약이기도 하니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큰 공정 바라지 않는다는 사람들, 주변에 많다. 작아도 좋으니 하나라도 확실히 고치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용산이나 서초동 검찰청, 세종 관가에서는 안보이는가. 다음 대통령 입에서 또다시 “공공기관개혁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겠다”는 도돌이표 공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이런 것 하나 못 고치는 수준밖에 안 되는가.
이강윤 정치평론가-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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