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금융산업에서도 BTS(방탄소년단)와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하겠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7월 취임 후 가진 첫 공개회의에서 밝힌 포부입니다. 금융권의 도약을 발목 잡는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BTS처럼 활약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얘기입니다.
1년이 지난 현재 '금융의 BTS'라는 단어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졌습니다. 올 들어서는 금리 상승기 높은 이익을 거둔 은행권에 대해 '이자 장사', '돈 잔치'라는 프레임이 장악했는데요. 당국은 상반기 내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개최하면서 각종 추가 규제를 마련했습니다.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완화가 금융권의 대표적인 규제로 손 꼽히는데요. 금융위원회는 당초 이달 안에 구체 방안을 내놓기로 했지만 돌연 발표를 연기했습니다.
금융위는 당초 금융회사의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구체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었습니다. 금산분리 완화 방안은 금융지주와 은행의 비금융회사 출자 한도를 현행 각각 5%, 15%보다 확대하는 게 골자입니다. 하반기 금융당국이 발표하는 정책 중 금융권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정책이었습니다.
최근 경남은행과 KB국민은행, 대구은행 등에서 횡령, 미공개정보 이용, 유령계좌 개설 등의 대형 사고가 연달아 터지면서 금산분리 완화에 발목이 잡힌 모습입니다. 금융산업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금융사에 특혜로 보여질수 있는 금산분리 완화안을 내놓을 경우 역풍이 불 수 있습니다.
은행과 증권, 보험사, 저축은행 등은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습니다. 수익성을 다각화할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만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저축은행업계는 올 상반기 1000억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불안감은 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빅테크 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대환대출 인프라와 예금중개 서비스와 같이 금융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 금융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는 빅테크 기업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중개 수수료가 주 수입원인 빅테크 기업의 특성상 앞으로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수수료 부담을 최종적으로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금융권이 바라는 금산분리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소유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금융사가 금융업무 수행에 도움이되는 비금융회사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지분을 조금 더 열어달라는 겁니다. 소유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비금융업에 진출할 길이 열리는 동시에 기술력을 가진 영세한 핀테크 기업들도 금융사로부터 자금 수혈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라는 정의에 누구도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플랫폼 경쟁으로 번지는 산업 간 경쟁구도에서 정부 역할은 금융과 비금융 간 융합을 통해 혁신적 서비스가 출시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과거 규제에 묶여있는 금융사들을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방치할 경우 이자 장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핑계거리를 던져주는 셈입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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