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중국의 경고…칩4 동맹에 '공급망 수호'로, '내정간섭' 뼈도 담았다
왕이 '독립자주'·'다자주의' 강조…"미국 편에 서서 중국 견제하지 말라" 의미
사드·한한령·북 비핵화 '평행선'…"박진, 할 말 다했다" 평가도, 향후 조율 계기 마련
2022-08-10 16:00:12 2022-08-10 22:12:37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뉴시스 사진)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중국이 한국과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을 강조하며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견제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이른바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에 한국이 참여를 검토하는 것에 대한 우회적 압박이었다. 여기에 중국은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 미중 패권경쟁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 의도대로만 움직이는 것을 '내정 간섭'으로 규정했다. 치열한 신경전 속에 중국의 경고도 보다 확연해졌다는 평가다.
 
10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진 외교부 장관은 전날 중국 산동성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및 만찬을 진행했다. 대면 회담은 이번이 두 번째로, 두 사람은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첫 대면 회담을 가진 바 있다.
 
왕이 부장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양국이 해야 할 '다섯 가지'를 거론했다. 우선 "서로의 중대 관심 사항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또 "미래 30년을 향해 중한 양측은 독립 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며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해야 하고, 평등과 존중을 견지해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자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왕이 부장이 "독립 자주를 견지하고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다자주의를 견지해야 한다"고 밝힌 건 미국 편에 서서 중국을 견제하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간 '한미동맹 강화' 기조 속에 각종 현안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등 선명하게 미국 편에 섰다. 연장선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가입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도 참가했다.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칩4' 동맹 참여까지 검토 중이다. 대통령실은 "국익 차원에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은 한국의 참가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중국은 즉각 한국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독립자주'와 '다자주의'라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또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목을 통해 한국이 미국의 입김에 휘둘리고 있으며, 중국의 대만 문제에 대한 간섭도 배제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왕이 부장은 '칩4'에 한국이 참여를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안정적이고 원활한 공급망과 산업망을 수호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박 장관은 '공급망 안정'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지만, 왕이 부장은 '공급망 수호'로 더욱 강한 의지를 밝혔다. 미국은 파운드리의 대만, 메모리 반도체의 한국, 반도체 장비의 일본과 함께 반도체 동맹 '칩4'를 결성, 중국을 반도체로 옥죄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중국이 전세계 반도체 시장 3분의1을 차지하고 있어 반도체 동맹은 심각한 매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박 장관은 왕이 부장에게 "특정 국가를 배제할 의도가 결코 없다"고 안심시켰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이번 회담에서 왕이 부장의 발언에 대해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지나치게 (한국 정부가)미국에 편향되어서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을 취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소장은 "(이번 회담에서)서로 간에 지켜야 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상당히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라며 "미중 전략경쟁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고, 북한도 도발을 더 강화할 텐데, 한중이 서로의 이익을 존중해주면서 소통하고 배려해주는 관계를 가져간다는 게 대단히 시대적인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뉴시스 사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이에 따른 한한령 해제, 북한 비핵화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양국은 평행선을 달렸다. 한국은 시종일관 사드가 북한 핵·미사일에 대한 대응용이며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반면 중국은 한국에 배치된 사드가 미국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위함이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양국이 이번 회담에서 사드와 관련한 각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전했다는 것은 중국의 한국에 대한 사드 운용 제한 요구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향후에도 사드의 정상적 운용을 놓고 한중 간에 갈등이 불거질 소지는 여전하다. 한한령 해제, 북한 비핵화 등의 문제는 박 장관이 거론했음에도 중국 외교부 발표에는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박 장관이 한중 관계에 우려될 만한 현안을 가감없이 꺼냈다는 점은 향후 긍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중 간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면서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양국이 이를 조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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