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정부가 의약품 구입 불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비대면 구매가 가능한 약 자판기(화상투약기) 도입 카드를 매만지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제약업계는 말을 아끼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20일 약 자판기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약 자판기는 투약기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약사와 상담한 뒤 필요한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기계다. 이 기계가 취급하는 약은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제한된다.
정부 차원의 약 자판기 도입 논의는 과거부터 있었다. 논의의 출발점은 저녁이나 심야 시간대, 휴일처럼 약국에서 직접 약을 구매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이 15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약 자판기 추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약사회)
대한약사회는 약 자판기 도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주장을 살펴보면 약 자판기 도입이 의약품 구매 불편 문제를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대한약사회는 전날 최광훈 회장과 권영희 서울지부장이 각각 용산 대통령실과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진행한 1인 시위를 오는 17일까지 이어갈 방침이다. 이와 함께 오는 19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약사궐기대회도 열 계획이다.
대한약사회가 내놓은 의약품 구입 불편 문제 해소 방안은 심야약국 확대와 이를 위한 제도 개선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약 자판기는 늦은 시간에 의약품 구입을 쉽게 하자는 차원에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라며 "약 자판기를 도입하더라도 취급할 수 있는 약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또 "늦은 시간에도 약국에서 약이 취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 중 하나가 심야약국 운영 확대"라며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직간접적 비용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선 약국에서도 약 자판기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늦은 시간 긴급하게 일반의약품이 필요할 정도라면 약 자판기 외에도 다른 방법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종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A씨는 "늦은 시간에 급하게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면 약 자판기에서 일반의약품을 사는 대신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가야 한다"며 "약 자판기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인건비나 부대비용을 감안하면 도입되더라도 금세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에선 약 자판기 도입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이 나오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와 대한약사회를 중심 축으로 하는 이해당사자 간의 견해 차이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반의약품은 영업이익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며 "역할만 놓고 봐도 제약사는 약을 생산해 공급하는 입장인 만큼 이해당사자 간 의견 조율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약 자판기 도입은 소비자가 의약품을 구매 기회가 넓어진다는 장점도 있는 반면 약물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어느 한쪽의 의견만 반영해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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