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비트의 승부사들
2022-03-08 06:00:00 2022-03-08 06:00:00
OTT세상이 되면서 음악팬들도 행복해졌다. 음악 다큐멘터리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볼만한 작품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자서전, 다큐멘터리 문화가 발달한 영미권에서는 매년 적지 않은 음악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 이는 곧 음악 문화의 질적, 양적 다양성을 견인해왔다. 역사와 함께 담론의 두께도 두터워졌다. 영어가 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파일을 구해 음악 지식을 넓힐 수 있겠으나, 안된다면 누군가 한글 자막을 제작 배포하는 걸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OTT는 그런 이들에게 쏟아지는 성수의 폭포다. 기존에 제작된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매년 새로운 작품들이 또 만들어진다. 많은 작품을 추천하고 싶지만, 그 중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 편을 소개한다. <비트의 승부사들(The Defiant Ones)>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현재는 애플에 인수된) 세계 최대 헤드폰 회사 비츠의 공동 설립자 지미 아이오빈과 닥터 드레의 일대기를 풍부한 인터뷰로 재구성한다. 본인들을 포함, 주변의 많은 인물이 카메라 앞에서 증언한다. 그 면면이 장난이 아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 보노, 패티 스미스, 스눕 독, DOC, 아이스 큐브, 트렌트 레즈너, 피 디디, 켄드릭 라마, 에미넴, 윌.아이.엠, 그웬 스테퍼니 같은 거물이 줄줄이 출연한다.
 
1970년대 초반 레코딩 스튜디오의 보조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한 지미 아이오빈. 그의 이름이 음악계에 알려진 건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1975년 작 ‘Born To Run’이었다. 첫 프로듀서를 맡은 패티 스미스의 앨범에서는 확실한 싱글을 위해 브루스 스프링스틴으로부터 ‘Because the Night’를 받아냈다. 아이오빈의 연인이던 스티비 닉스의 앨범을 위해선 톰 페티로부터 ‘Stop Draggin’ My Heart Around’를 받았다.
 
다른 이에게 좀처럼 곡을 주지 않는 당대 뮤지션들로부터 얻어낸 이 노래들은 패티 스미스와 스티비 닉스의 최대 히트곡이 됐다. 아이오빈에게는 엔지니어와 프로듀서의 재능뿐 아니라 제작자, 즉 비즈니스맨으로서 능력도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이오빈은 콘솔 앞보다 전화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리고 1990년 그는 자신의 회사 인터스코프 레코드를 설립한다.
 
로스앤젤레스(LA) 근교 소도시 콤프턴 출신인 닥터 드레는 글을 깨우치기 전 음반에 붙은 레이블만 보고도 거기에 어떤 음악이 담겼는지를 알아차리고 사람들에게 틀어줄 정도였다고 한다. 힙합 초창기에 동네 나이트클럽 DJ로 데뷔한 그는 동네 친구들과 힙합 그룹을 결성했다. 이지 이, 아이스 큐브, DJ 옐라, 그리고 닥터 드레로 구성된 이 팀의 이름은 N.W.A. 그들은 ‘Fuck The Police’가 담긴 명반 ‘Straight Outta Compton’으로 데뷔한다.
 
이후  닥터 드레는 팀을 떠나 새로운 레이블 데스로를 설립했고, 역시 명반 중 명반인 솔로 앨범 ‘The Chronic’을 냈다. 갱스터 힙합에 대한 음악산업계의 거부감, 닥터 드레에게 얽힌 복잡한 문제로 이 앨범을 내겠다는 곳이 없었을 때 그에게 손을 내민 이가 지미 아이오빈이었다. 아이오빈은 말했다. “‘The Chronic’을 듣자마자 이 친구가 인터스코프의 머리(head)가 될 수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데스로는 닥터 드레의 레이블이자 인터스코프 산하 레이블이 됐다. 이 레이블은 곧 스눕 독(당시에는 스눕 도기 독), 투팍 샤커 등을 데뷔시키며 1990년대 힙합 붐을 주도한다. 인터스코프는 나인 인치 네일스, 메릴린 맨슨도 데뷔시켰다. 가장 세기말적이었으며, 가장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이 팀들은 그 자체로 1990년대 분위기의 청사진이나 다름없었다. 아이오빈과 드레는 각각 록과 힙합이라는 영역에서 각자의 혁명을 이끄는 동업자가 됐다.
 
‘비트의 승부사들’은 둘의 인생 역정을 교차해 다룬다. 인터스코프와 데스로를 통해 서로의 타임라인이 교차하는 순간,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음반산업이 몰락할 때 스티브 잡스와 손잡고 아이튠즈 스토어의 출범에 일조하는 순간, 그들이 비츠를 설립하고 애플과 합병하는 순간 록과 힙합과 산업은 하나가 된다. 둘의 인연이 그려내는 사인 코사인 곡선이 곧 산업의 역사이자, 음반 산업의 황금기와 음원 산업의 여명기를 장식한다. 장르를 초월한, 산업 그 자체의 이야기를 통해 <비트의 승부사들>은 역으로 산업도 결국 사람이 이끄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잡한 숫자를 몰라도 음악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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