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제가 우크라이나 사람이어야만 전쟁에 반대할 수 있나요?”
대학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독일인 파울라씨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 규탄 집회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도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가 많이 열리고 있다”며 “국제적으로 몹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한국과 우크라이나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재한 외국인들이 모여 러시아를 한 목소리로 규탄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에 온 지 2년 정도 된 터키인 A씨도 자국인 터키뿐 아니라 전 세계가 나서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을 텐데 걱정되는 마음에 뭐라도 하고 싶어 나왔다”며 “각국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나서야지 정치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각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문제"라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다니고 있는 노르웨이인 엘리자벳 오모트씨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세계인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느냐”며 “노르웨이 정부는 물론 유럽이 나서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참여연대, 사회진보연대, 시민사회단체 및 우크라인들이 28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평화적 해결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집회에서 만난 한국인들도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표했다. 성시현 서강대학교 학생은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민간인이 다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세계 각국 정부 인사들이 이 일에 대해서 민간인을 생각하며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한국인 문현웅씨는 우크라이나에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의 여자친구는 수도인 키예프에서 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지토미르에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그럼에도 길 곳곳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 씨는 “여자친구와 통화할 때면 매번 눈물 바람”이라며 “이 시대에 전쟁이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올여름 우크라이나에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됐다”며 “푸틴이 히틀러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날 선 목소리를 냈다.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한국에서 3D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줄리아씨는 “나이 든 아버지가 매일 밤 지역민들과 도시를 순찰하며 위장 러시아 군인들을 잡아내는 일을 한다”며 “아버지께서는 걱정 말라고 하지만, 지난 목요일부터 한숨도 자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는 러시아 군대와 푸틴은 미쳤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대 어학당에 다니는 야로슬라바씨는 “가족들은 지금 지하실에 숨어 있다”며 “푸틴에게 매우 화가 나고,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우크라이나인 콘차렌고 율리아씨도 “지금 우크라이나 도심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총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고, 죽는다는 공포에 모두가 떨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민사회에 감사하지만,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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