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투스텝 박자와 UK 알앤비, 그러니까 옛날 즐겨듣던 크랙 데이빗 ‘세븐 데이즈’ 같은 비트의 음악을 이렇게 내놓을 줄은 몰랐어요.”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공연장 스트라디움에서 열린 R&B 가수 오션프롬더블루(oceanfromtheblue·본명 강주원·29)의 음악감상회. 새 EP 앨범 ‘forward’를 하루 앞둔 이날, 그는 “디스코하우스 장르부터 G-펑크,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듀서들과의 합작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음반을 만들었다. R&B 가수지만 R&B스럽지 않은 음악으로 레벨업 한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R&B 가수지만 R&B스럽지 않은 음악”
오션프롬더블루는 R&B 신에서 떠오르는 신예다. 2018년과 지난해 ‘Luv-fi’ 연작 시리즈는 유튜브 MZ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다. 의도적 저음질을 뜻하는 로파이(lo-fi)를 음반 전체에 투명한 안개처럼 깔고 몽롱한 화성과 부드러운 가성을 풍성한 코러스와 겹쳐낸다. 밴드로 음악을 시작한 만큼 직접 기타 코드를 주무르기도 한다.
멜로우(삶 속의 단순하고 자연적인 즐거움들을 긴장을 푼 상태에서 조용히 즐기는)한 음색 위로 흐르는 ‘90년대생들의 자화상’, ‘도서관에서 꾸는 한낮의 꿈’ 같은 단상들은 알록달록한 캔디를 베어 물듯 달콤하다. 모던한 패션 감각의 모델들을 앞세운 뮤직비디오와 음반커버도 MZ세대의 구매를 당길 만큼 매혹적이다.
“‘forward’ 음반은 과거에 비해 장르적 확장성이 있는 앨범입니다. 총 7분의 프로듀서를 한분씩 번갈아 만났고 4-5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언택트 시대라 주된 커뮤니케이션은 이메일로 이뤄졌고요.”
디스코 하우스 프로듀서이자 이번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 ‘폴룬스(Fallens)’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듀서들이 ‘언택트 송캠프’를 차렸다. 프로듀서 사일리와 래퍼 던말릭과 만든 수록곡 ‘poison’에서는 정통 R&B의 그루브 대신 크랙 데이빗 ‘세븐 데이즈’ 풍 비트들이 약동한다.
최근 10대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프로듀서 비앙과는 앨범과 동명의 타이틀곡을 썼다. 아련한 고음의 신디사이저, 둥둥거리는 무거운 톤의 베이스 기타를 특징으로 하는 G-펑크 장르에 도전했다.
힙합 크루 바밍타이거의 프로듀서 언싱커블과 영국 버밍엄 출신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롬더풀, 팩토리 컴퍼니의 플러스넌 같은 이들도 앨범을 위해 뭉쳤다. 내년 초 오션프롬더블루는 이 프로젝트를 확장시켜 총 11명의 프로듀서 진이 참여한 정규 앨범을 낼 예정이다.
음악레이블 포크라노스의 박준우 에디터(왼쪽)과 오션프롬더블루. 사진/오션프롬더블루
○신경향 ‘네오 K팝’ 이끄는 ‘언택트 송캠프’
K팝이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뒤흔들면서, 국내 대중음악계의 지형도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의 수석 프로듀서인 피독(본명 강효원·38)만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록과 재즈, 힙합, 소울, R&B 소위 ‘장르 음악’에서 암약하는 프로듀서들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직접 곡과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와 합작해 앨범 콘셉트를 정하고 다양한 장르를 유입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2015년 데뷔한 2인조 프로듀서 ‘그루비룸(GroovyRoom)’가 붐뱁, 트랩 등 전자음악 장르와 결합한 새로운 경향의 시그니처 사운드를 성공시킨 이래, 최근 들어서는 오션프롬더블루처럼 그 범위가 더욱 촘촘하고 체계적이며 활발하게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 프로듀서 수민과 슬롬은 첫 합작이자 정규 앨범 ‘미니시리즈’를 냈다.
수민은 ‘네오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통한다. BTS, 레드벨벳, 청하를 비롯한 다양한 케이팝 음악도 프로듀싱 해왔지만 본인의 솔로작에서는 힙합,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R&B 장르들을 더 과감하고 깊게 결합시킴으로써 평단을 사로잡았다. 2019년 발표한 ‘OO DA DA’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 & 소울 노래상’을 수상했다.
슬롬은 박재범, 후디 등과 협업해왔고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자이언티, 기리보이, 사이퍼와 비트를 만들어온 힙합 프로듀서다. 올해 초 K팝 아티스트 청하의 음반에도 프로듀서진으로 참여했다.
둘은 새 음반에서 G펑크(곤란한 노래)부터 시부야 케이(한잔의 추억), 네오 솔(신기루), 하우스(여기저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과 변칙을 선보인다.
수민과 슬롬 첫 합작이자 정규 앨범 ‘미니시리즈’. 사진/EMA Recordings
오션프롬더블루 행사 진행을 맡은 박준우(Bluc) 대중음악평론가는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힙합, 알앤비 안에서는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흐름이 예전부터 있었지만 더 자유롭고 활발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션프롬더블루의 새 음반 역시 프로듀서진들 주도로 기획해 나오게 된 것은 이색적인 경우라 저도 신선했다”고 했다.
최근 본보 기자와 인터뷰한 일렉트로닉 듀오 우자앤쉐인은 향후 기회가 된다면 ‘K팝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이들은 VST(Virtual Studio Technology), 플러그인을 주무르며 얼개를 짠 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의 블루지한 팝 사운드로 채색하는 일렉트로닉 팝을 구현한다.
인터뷰 도중 에스파 ‘Next Level’에 리듬을 타던 이들은 “K팝이 산업성을 띈 음악이라고 폄하하는 시각에 대해 사실 이해를 잘 못하는 편이다. 요즘은 K팝도 정말 미끈미끈한 느낌의 깔끔한 사운드를 잘 뽑아내는 것 같아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반대로 언택트 시대임에도 해외의 ‘장르 음악’ 프로듀서진들을 국내 가수와 연결시키는 흐름도 활발하다. 레이블 코넥티드(CONECTD)는 ‘팔레트(PALETT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외의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섞어보는 실험 프로젝트다.
레이블 코넥티드(CONECTD)가 진행 중인 ‘팔레트(PALETTE)’ 프로젝트. 사진/코넥티드
현재까지 라틴 그래미 수상 경력의 프로듀서 니티 그리티와 바밍타이거의 소금, EDM 프로듀서 팻 록과 시티팝 아티스트 유키카, 일렉트로닉 프로듀서 써드파티와 밴드 넬 등의 협업을 성사시켜왔다.
음악레이블 코넥티드의 장세윤 팀장은 “팬데믹 시대에도 이메일로 음원을 주고받으며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음악장르의 확장성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해외 프로듀서진들을 국내의 인지도 있는 가수들을 매칭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브랜드가 안착되면 국내의 실력있고 활발한 프로듀서진들을 해외 유명 아티스트와 연결시키는 방향도 고민해볼 것”이라 전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