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최근 달러화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7개월여 만에 장중 1470원대를 넘은 원·달러 환율이 1500원 턱밑까지 바짝 다가섰습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종료와 엔화 약세가 맞물리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했고, 외국인 투자자의 '셀 코리아'(국내 자산 순매도)까지 더해지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거세졌습니다. 치솟는 환율에 기업은 비명을, 정부는 초조함이 엿보입니다. 환율 상승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외환당국은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으며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당국의 개입과 한·미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외환시장 안정' 합의까지 공개되면서 일단 환율 상승 폭은 꺾인 모습입니다. 다만 구조적인 원화 약세 요인들이 누적되면서 환율 불안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입니다.
환율 롤러코스터 장세에…당국 "가용 수단 적극 활용"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2원 오른 1471.9원에서 출발해 10.4원 내린 1457.3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이날 환율은 장 시작 10분 만에 1474.9원까지 치솟으며 불안한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12일 장중 1470.0원을 터치하며 1470원대를 뚫었고, 13일에는 장중 1475.4원까지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미·중 갈등이 격화했던 시기인 올해 4월9일에 장중 1487.6원까지 올라갔던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세를 이어가자 외환당국은 이날 오전 곧바로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이억원 금융위원장·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등 당국 수장들은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거주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환율이 한때 1470원을 상회하는 등 외환시장에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며 "구조적인 외환 수급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외 투자에 따른 외환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는 경우, 시장 참가자들의 원화 약세 기대가 고착화돼 환율 하방 경직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가용 수단을 적극 활용해 대처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외환·금융 당국은 국민경제와 금융·외환 시장의 안정을 위해 환율 상승 원인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국민연금과 수출업체 등 주요 수급 주체들과 긴밀히 논의해 환율 안정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습니다. 이날 외환당국의 강도 높은 발언에 원·달러 환율은 단숨에 상승 폭이 꺾이며 1450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환율 안정' 팩트시트 공개에도…구조적 원화 약세 요인 누적
최근 원·달러 환율이 치솟은 배경에는 미국과 일본의 상황 변화가 큽니다. 미국의 역대 최장 연방정부 셧다운 해제가 마무리 국면에 돌입하면서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 엔·달러 환율 상승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입니다. 통상 원화와 엔화는 높은 상관관계로 동조화되는 성향이 있습니다. 여기에 단기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자산을 순매도해 달러 수급을 흔든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쥐고 있는 상황 역시 환율 상승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환율이 롤러코스터 장세를 지속하면서 정부는 연일 초조함을, 내년 사업 계획 작성이 한창인 기업은 고환율 불똥이 튀면서 비명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날 공개된 조인트 팩트시트에 '외환시장 안정'이 별도 항목으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양국은 한국의 2000억달러 대미 직접투자와 관련해 "한국 외환시장 불안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데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며 "어느 특정 연도에도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액수의 조달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고 명문화했습니다.
또 "한국은 미화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시장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부분도 당초 알려진 내용대로 들어갔고, "투자 이행이 원화의 불규칙한 변동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시장에서는 양국이 한국의 외환시장 안정을 중요하게 보는 점이 확인되면서 환율 급등세가 진정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하지만 조달 방식이나 시기 등이 조정돼도 천문학적인 투자 금액 자체는 계속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에 외환시장의 압력은 여전하다는 평가입니다. 더불어 당국의 개입은 일시적일 뿐, 구조적으로 원화 약세 요인이 누적된 상황에서 환율의 하향 안정세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함께 나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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