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한·미 정부의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14일 최종 확정됐습니다. 지난달 29일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관세·안보 관련 주요 쟁점에 합의한 지 16일 만입니다. 이번 합의에는 핵심 의제였던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 우리나라의 숙원 과제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공식적으로 반영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팩트시트 문안에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와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도 담겼습니다. 더불어 연간 200억달러 상한의 대미 투자와 주한미군 330억달러 지원 계획 등이 명시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협상 결과를 발표했으며, 백악관도 동시에 팩트시트 전문을 공개하면서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확인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에서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최종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이 대통령,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 "무역·안보 협의 최종 타결…공여 우려 불식"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경제와 안보의 최대 변수 중 하나였던 한미 무역·통상 협상 및 안보 협의가 최종적으로 타결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번 의미 있는 협상 결과를 도출하는 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합리적 결단이 큰 역할을 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에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전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굳건한 신뢰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호혜적 지혜를 발휘한 결과로 한미 모두가 상식과 이성에 기초한 최선의 결과를 만들었다"며 "특히 우리 경제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또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에 한해 투자를 진행한다는 점을 양국 정부가 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원금 회수가 어려운 사업에 투자를 빙자한 사실상 공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일각 우려와 불신도 확실하게 불식하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양국은 앞으로 조선과 원자력발전 같은 전통적 전략산업부터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미래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협력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며 "과거 미국이 대한민국을 도왔던 것처럼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동맹인 미국의 핵심 산업 재건에 함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과 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강력한 제조 혁신 역량을 갖춘 대한민국이 손을 맞잡고 세계 무대로 함께 진출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한국서 원잠 건조 추진…국방비 GDP 3.5%까지 확대
우선 안보 분야에서는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이 공식 합의된 것이 핵심으로 꼽힙니다. 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서는 군사·안보 협력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상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단 미국은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계획을 승인하고, 연료 조달 방안까지 포함해 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미국 해군 함정을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계획도 공식화하며, 이를 위한 조선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조선소 현대화, 정비·보수, 인력 양성 등 전반적 산업 기반 강화에 착수키로 했습니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미국이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계획을 '한미 원자력 협정'(123협정) 범위 내에서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주한미군의 지속적 주둔과 확장억제 제공을 재확인했으며, 이 대통령은 국방비를 국내법에 따라 가능한 한 빨리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까지 증액할 계획임을 공유했습니다. 한국은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무기 구매에 250억달러를 지출하고, 주한미군 지원에 330억달러를 투입할 방침입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양국 간 협력을 통해 속도를 내기로 했으며, 미국은 한국의 대북 재래식 전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첨단무기 체계 획득과 방산 협력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공동 입장이 재확인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8년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이행 의지를 다시 강조했고, 북한이 의미 있는 대화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밖에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 수호, 국제해양법 준수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질서 유지에 대한 공조 방침도 명문화했습니다.
미 관세 15% 상한·반도체 대우…"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아"
가장 눈에 띄는 항목 중 하나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입니다.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승인한 조선 분야에만 1500억달러가 투입되며, 여기에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 체결을 전제로 한 2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까지 포함됐습니다. 이번 투자는 조선뿐만 아니라 반도체, 에너지, 의약품, AI, 양자컴퓨팅, 핵심광물 등 안보 연계형 산업 전반을 아우릅니다.
미국은 이에 상응해 관세 구조를 조정합니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오는 2025년 4월2일부터 발효되는 행정명령 제14257호에 따라 한국산 제품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최혜국(MFN)' 세율 중 높은 쪽 혹은 15%의 고정 세율 중 더 높은 쪽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중 자동차·부품, 원목·제재목 등 목재류에 부과되던 232조 관세는 일괄 15%로 조정합니다. 기존 FTA 혹은 MFN 세율이 15% 이상인 품목에 대해서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며, 15% 미만인 경우엔 차액만큼을 더해 15%로 맞추기로 했습니다.
특히 관심을 모았던 반도체 품목 관세와 관련해서는 "반도체(장비 포함)에 부과되는 어떠한 232조 관세의 경우에도, 미국은 한국에 대한 232조 관세에 대해 미국이 판단하기에 한국의 반도체 교역 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합의에서 제공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부여하고자 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이에 대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실상 대만과 비교해도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대우를 확보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 200억달러 한도 명시…비관세 장벽 완화
외환시장 안정성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양국은 전략적 투자 MOU 이행에 따른 시장 영향 가능성을 사전에 조율했으며, 한국은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달러 조달 요구를 받지 않도록 한다는 조항이 삽입됐습니다. 또한 한국은 외화 조달 시 외환시장을 통한 직접 매입보다는 간접적 방식으로 조달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시장 불안이 예상되는 경우 조달 시점 및 금액 조정 요청이 가능하고 미국은 해당 요청을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검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밖에 비관세 장벽 완화와 상호 시장 개방 조치도 담겼습니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연방자동차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차량의 한국 반입 물량을 제한해온 연간 5만대 상한을 폐지하고, 배출가스 인증 과정에서 미국 기업에 추가 서류를 요구하지 않는 방향으로 규제를 정비하기로 했습니다. 김 정책실장은 "지난해 미국산 자동차 수입이 4만7000대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쌀과 쇠고기 등 농업 분야의 민감성을 고려해 추가 시장 개방 내용을 담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번 협상에 대한 소회로 "정말로 어려웠던 것은 대외적 관계에 있어서 국내에서 정치적 입장이 조금 다르더라도 국익과 국민을 위해서 합리적 목소리를 내주면 좋은데, '빨리 합의해라' '빨리하지 못하는 게 무능한 것이다' '상대방의 요구를 빨리 들어줘라' 하는 압박을 내부에서 가하는 상황이 참으로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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