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드라이클리닝 냄새가 간 망가뜨린다"
생활용품 속 PCE가 간 질환 ‘유발 요인’
미 환경보호청, 10년 안 PCE 퇴출 계획
2025-11-14 09:53:01 2025-11-14 14:20:22
간 질환은 주로 세 가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발생합니다. 과도한 음주, 비만·당뇨·고콜레스테롤과 연관된 간 내 지방 축적, B형 및 C형 간염 같은 바이러스 감염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의과대학 연구진은 간 손상의 또 다른 잠재적 원인을 확인했습니다. 학술지 <리버 인터내셔널(Liver International)>에 지난 10월16일 실린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드라이클리닝에 널리 쓰이고 있고 접착제나 얼룩 제거제, 스테인리스 스틸 광택제 같은 가정용 제품에서 발견되는 화학물질인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이 심각한 간 손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체중도 정상인데 왜 간이 나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는 환자들의 질병 원인으로 이 ‘새로운 범인’을 지목한 것입니다. 
 
가정용 생활용품에 쓰이는 접착제나 얼룩 제거제, 스테인리스 스틸 광택제 등에서 발견되는 화학물질인 테트라클로로에틸렌(PCE)이 심각한 간 손상과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 시내 한 무인 빨래방 모습.(사진=뉴시스)
 
연구진은 혈중 PCE가 검출된 사람은 간 섬유화가 발생할 위험이 3배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알려진 알코올이나 비만, 당뇨, 간염 바이러스 등 위험요인이 없더라도 PCE 하나만으로도 간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이미 PCE를 ‘발암 가능성 물질(2A)’로 분류하고 있으며, 방광암·다발성골수종·림프종 등과의 연관성이 꾸준히 보고돼 왔습니다. 
 
“드라이클리닝은 석유로 한 빨래”
 
USC 연구진은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의 2017~2020년 성인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놀랍게도 전체 성인 중 약 7%의 혈액에서 PCE가 검출됐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노출량이 늘면 간 손상 위험이 정비례해 증가한다’는 점입니다. 혈중 PCE 농도가 1밀리리터당 1나노그램(1ng/mL) 증가할 때마다 심각한 간 섬유증 발생 가능성은 5배 증가했습니다.
 
일반적인 질병과 달리 고소득층일수록 PCE가 검출될 확률이 높았습니다. 연구진은 “드라이클리닝 이용 빈도가 높은 계층일수록 노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드라이클리닝 업계 종사자들은 장기간 고농도 노출로 인해 가장 취약한 집단으로 지목됐습니다.
 
이 연구의 주저자이자 간 전문의 브라이언 P. 리(Brian P. Lee) 교수는 “인체 내 PCE 농도와 중증 간 섬유증의 연관성을 최초로 조사한 이 연구는 간 건강에 환경 요인이 미치는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왔음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이번 연구는 간질환의 ‘비전통적 원인’을 드러낸 첫 대규모 분석입니다. 그는 “환자들은 '술도 안 마시고 간 질환과 연관된 건강 문제도 없는데 어떻게 간 질환이 생길 수 있나'라고 묻곤 한다. 그 답은 PCE 노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리 교수는 PCE가 간 질환을 유발하는 여러 환경 독소 중 하나일 뿐이라며 간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 독성물질이 더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간 건강이 나빠지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준다. (사진=NIH)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PCE의 유해성을 인정하고 지난해 향후 10년 내에 드라이클리닝 산업에서 PCE를 전면 퇴출하는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PCE 규제 및 대체물질 전환 정책이 상대적으로 더딘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드라이클리닝 중심 세탁 문화는 노출 위험이 더 크다”라며 “PCE는 개인이 완전히 피할 수 없는 물질이지만, 일상 속 작은 선택만으로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집독! 적과의 동침』의 저자인 허정림 박사는 “드라이클리닝은 석유계 용제나 세탁용 벤젠을 물에 희석시켜 세탁기로 돌리는 방식이다. 이때 물:세제:석유계용제의 비율은 1:1:8이다. 결국 기름으로 빠는 것이다. 유기용제가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드라이크리닝 후 비닐을 벗기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에어샤워 후 입어야만 유해물질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PCE 저감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드라이클리닝 옷이나 카펫 등은 24~48시간 환기 후 착용
② ‘웻클리닝(wet cleaning)’ 세탁소 이용
③ 접착제·광택제 구매 시 PCE(Perchloroethylene) 성분표 확인
④ 세탁물을 안방이나 차에 두지 않기
⑤ 집 안 창문 환기 습관화
⑥ 얼룩 제거제는 실외 또는 창문 개방 후 사용
 
간은 ‘침묵의 장기’라 불립니다. 손상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 연구는 우리가 무심코 맡아온 드라이클리닝 냄새, 반짝이는 광택제  분사, 주방 접착제 한 방울 등이 시간을 두고 간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일상의 작은 습관을 바꿔 간 건강을 지키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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