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림수는 '제조업 리쇼어링'…정점에 '마가노믹스'
"리쇼어링 안 하면 배제"…한국 성장률 직접 타격
2025-08-07 18:14:00 2025-08-07 19:09:20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내 생산을 조건으로, 반도체에 대해 '0% 또는 100%'란 양자택일 관세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보조금 대신 협박으로 '리쇼어링'(자국 내 생산)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동맹국 전략산업까지 볼모로 잡고 있는데요. 정점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노믹스'(미국 우선주의 경제 전략)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팀 쿡 애플 CEO(가장 오른쪽)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웃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실상 '명령'…리쇼어링 압박 본격화
 
7일 정부와 경제계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도체 관세'는 이전에도 거론된 적 있지만 이번처럼 100%의 초고율을 수치로 못 박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단 하나의 예외 조건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상의 '명령'으로 기존의 관세 압박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여타 품목 관세가 상대국과의 협상에서 최대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지렛대였다면, 반도체 관세의 목적은 '리쇼어링' 그 자체에 있다는 분석입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 중 하나일 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등 고부가 산업의 최종 소비처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장입니다. 미국 시장을 포기한다는 건 글로벌 경쟁력 상실을 의미합니다. 
 
실제 100% 관세가 부과되게 되면, 일차적인 부담은 한국·대만 등으로부터 반도체를 수입하던 미국 완제품 생산업체가 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 카드를 꺼내 든 이유는 일시적 비용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은 비단 트럼프 행정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해 시작했고, 트럼프 1기에서 무역수지 개선과 국가안보 강화를 목적으로 본격화됐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역시 공급망 복원을 내세워 이를 한층 더 밀어붙였습니다. 
 
다만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등 보조금으로 유인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트럼프 2기는 관세로 시장 진입 자체를 막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보상'에서 '협박'으로, 리쇼어링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평가입니다. 
 
실제 제조업 리쇼어링 효과는 상당했습니다. 2010년 이후 리쇼어링으로 창출된 일자리는 약 20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미국 비영리단체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리쇼어링과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통해 미국 내에서 새롭게 생긴 일자리는 2022년 34만3000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2023년에도 28만7000개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시절 리쇼어링을 2기에서 반드시 완성하겠다는 의지입니다. AI·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주력산업까지 미국 본토로 가져오게 되면, 공급망·안보·고용·기술 주권까지 동시에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등 핵심 지지층에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팀 쿡 애플 CEO와 함께 오스틴에 있는 애플 생산 공장을 방문했다. (사진=AP연합뉴스)
 
애플도 미국으로…삼성·하이닉스도 시험대
 
애플도 6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추가 투자를 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며 결국 트럼프 대통령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생산 기지에서 주요 제품·부품을 생산해 오던 애플을 노골적으로 압박했습니다. 
 
이날 애플의 투자 계획 발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애플이 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성과를 과시했습니다. "당장 생산하지 않더라도 미국 내 생산을 약속하면 아무런 관세가 없다"며 다른 글로벌 기업에 대한 압박도 이어갔습니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국 <블룸버그>에 "이번 투자의 목표는 핵심 부품을 미국 내에서 제조하는 데 있다"고 밝혔습니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도 "오늘 애플 발표는 우리 제조업의 또 다른 승리"라며 "미국의 경제와 국가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핵심 부품 생산의 리쇼어링을 뒷받침하게 될 것"이라고 자평했습니다. 
 
애플은 7일 삼성전자가 애플의 차세대 칩을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미국 현지화 전략을 위해 삼성전자를 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100% 반도체 관세가 부과될 경우, 결국 미국 완제품 제조사는 관세를 피하고자 미국 내 생산시설을 갖춘 공급처로의 전환을 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주요 반도체 생산국은 미국 내 생산능력 확보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리쇼어링 압박을 더욱 크게 받게 되는 수순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으로 전환할 경우, 수출에 의존해온 한국의 성장 전략에 직격탄입니다. 미국 내 생산분만큼 한국 국내총생산량(GDP)에는 반영되지 않고, '국산 반도체 수출→성장'의 연결 고리도 끊깁니다. 고용 창출 효과는 미국으로 이전되며, 산업 공동화 우려가 현실화되는 구조입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는 수출을 통해 전 품목 중 가장 높은 부가가치(약 789억달러·108조)를 창출했습니다. 취업 유발 인원 역시 34만6000명으로 자동차(69만5000명)에 이어 2위였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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