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티메프와 홈플러스 등의 재무적 위기로 인해 유통 기업의 정산 주기를 단축하려는 움직임이 국회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대규모유통업법상 정산 주기는 60일 이내로 규정되어 있으며, 최근 발의된 법안들은 이를 10일에서 최대 40일로 대폭 줄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소 납품업체들의 현금 흐름을 돕기 위한 선한 의도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보장하진 않기 때문이다.
유통업의 거래 방식은 직매입, 특약, 위수탁, 임대 등 매우 다양하며 방식마다 고유한 재무적 특성과 리스크가 다르다. 특히 직매입 방식은 유통업체가 직접 제품을 매입하여 재고 관리 및 판매 책임을 모두 부담하는 구조다. 납품업체는 이에 따라 재고 부담이나 판매 불확실성을 벗어나 제품 개발 및 혁신에 집중할 수 있다. 실제로 직매입 거래는 중소 제조업체나 스타트업 기업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판매 경로로 인정받고 있으며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이를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직매입 정산 주기를 단축하면 대형 유통업체들은 재고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매입 물량을 크게 줄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정산 주기를 30일로 단축하면 유통기업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직매입 비중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주요한 판매 통로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유통업체들은 생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대기업이나 저가 해외 제품만 주요 판매 품목으로 남게 될 수 있다.
실제로 경영학계에서는 최근 연구에서 "정산 주기 단축이 시장 독과점을 심화시키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경쟁력을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통업의 거래 방식과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산 주기를 제한하는 정책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역시 일괄적인 정산 주기 단축은 다양한 서비스 형태와 업태를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비자 및 납품업체 보호 취지는 타당하지만, 보다 효과적인 정책을 위해 거래 유형의 특성을 반영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직매입 거래의 경우 정산 주기를 오히려 현행 60일보다도 더 늘리는 방향으로 조정하여, 납품업체가 안정적인 사업 환경에서 제품 혁신과 품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국회와 정부는 유통업계의 현실을 면밀히 살피고, 혁신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보다 정교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결정자들의 보다 심도있는 논의와 세심한 접근을 기대한다.
임혜자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 수석부소장(전 국민권익위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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