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가지에서 휴식을 취하던 검독수리가 비행 전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 있다.
'하늘의 제왕이 누구냐'를 묻는다면 단연 '검독수리'라고 할 수 있어요. 흔히 독수리가 하늘의 최강자로 알고 있는데 독수리는 덩치만 클 뿐 동작이 느려서 사냥은 하지 못해요. 독수리는 사체만 먹는 자연의 청소부이고 작은 늑대까지 사냥하는 용맹한 새가 바로 검독수리죠. 검독수리는 줌 기능을 가진 빼어난 시력,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여우, 고라니까지 단숨에 제압하는 용맹한 맹금류랍니다. 이 새의 머리 깃털은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죠.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에서 검정빛을 띠지만, 햇빛 아래서는 머리 깃이 노란빛이 더해져 그 금빛이 더욱 도드라져요. 그러나 멀리서 보면 이러한 색이 잘 드러나지 않아 검정색으로 보일 때도 있지요.
한국의 조류도감에 검독수리로 알려진 이 이름에는 다소 정정이 필요해요. 검독수리는 금빛 나는 머리 깃과 하늘의 제왕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영어로는 Golden Eagle(금수리), 프랑스어로 Aigle Royal(제왕수리), 그리고 중국어로는 金雕(금조)로 불리죠. 따라서 한국의 조류도감에 표기된 검독수리라는 이름은 이 새의 특징과 맞지 않는 면이 있어요. 외형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마땅히 금수리나 검수리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를 것 같아요.
검독수리는 대부분 산악지대에 서식하며 나무가 적고 작은 초본이 있는 개활지에서 작은 네발짐승이나 비교적 큰 새를 사냥하지만, 직접 잡지 않은 사체도 거둬들여요. 미국 서부의 스태프 지역, 북유럽에서 동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톈산산맥, 심지어는 중동 사하라 사막의 건조 산악지대까지 북반구 전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요. 북극의 추위에서 부터 중동의 뜨거운 열기까지 극복하며 뛰어난 적응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 분포지역의 공통된 점은 주변이 트여 있는 경관으로 주로 언덕이나 산악 지역, 혹은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절벽이나 나무, 먹이가 있는 곳이죠. 적응력이 강한 이 맹금류는 로마 시대 이후 생존과 적응, 용맹함을 대변하는 최고 권력의 상징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20세기 초 미국인 조류학자 올리버 루터 오스틴(Oliver L. Austin)의 'The Birds of Korea(한국의 새)'에는 검독수리의 관찰 및 번식 기록이 담겨 있지요. 특히 경기도 철마산과 황해도 금첨에서 채집한 알은 과거 한국에서 검독수리가 텃새로 서식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이후 1974년 내장산에서 번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쌍이 한국에서의 마지막 검독수리 번식 기록으로 남아 있어요. 2025년 현재 제주도에서는 봄, 여름철에 검독수리가 관찰돼 번식하는 곳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한반도 남한에서 번식 개체는 발견되지 않고 있어요.
겨울철 충남 천수만에 찾아온 검독수리가 소나무에서 주변을 살피다가 기러기를 급습하려고 하강하고 있다.
겨울철 중국, 몽골과 러시아에서 번식한 검독수리 중 일부가 한반도를 찾아와요. 그 검독수리가 주로 찾아오는 곳 중의 하나인 충남 서산 천수만의 외딴 소나무숲. 이곳은 방조제 공사로 생겨난 인공호수 부남호와 천수만의 넓은 간척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야산이죠. 함박눈이 내리며 겨울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겨울 소나무 가지 위에 검독수리가 의연히 앉아 있는 늠름한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무언가를 꿰뚫어 보듯 응시하는 검독수리의 눈빛은 마치 허공에서 잔으로 떨어지는 포도주 줄기 같습니다. 오래 숙성한 포도주처럼 노랗고 갈색빛이 도는 그 눈은 제왕의 품격 같은 것이 느껴지죠. 한 방향을 한참 주시하던 검독수리는 순간 몸을 퉁기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립니다. 하늘을 미끄러지듯 위에서 아래로 활공하는 그 속도감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데요. 검독수리가 발톱을 내리꽂은 논밭에는 흩날리는 깃털 사이로 고개를 떨군 멧비둘기가 보입니다. 사냥감을 움켜쥔 검독수리는 소나무숲 비탈면에 내려앉아 강인한 발톱과 날카로운 부리로 먹이를 찢어 먹습니다. 천수만의 평야를 굽어보며 이곳 생태계를 지키는 검독수리는 그야말로 하늘의 제왕이라 불릴 만합니다.
저는 매년 겨울 이곳을 찾아 검독수리를 만나곤 합니다. 지난 6년간 관찰해 온 어린 검독수리는 점차 황금빛으로 깃털이 물들며, 어느새 늠름한 어른 새의 모습으로 자라났습니다. 다 자란 이 새가 언젠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검독수리와 같은 맹금류가 사계절 살아가는 지역은 그 자체로 건강한 생태계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검독수리의 번식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린 새 2~4마리를 약 60일 동안 건강하게 키우려면 번식지 주변에 충분한 먹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이 한반도에서 터를 잡기 어려운 이유는 야생동물 감소와 서식지 파괴로 인해 안정적인 먹이 사냥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죠. 날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환경 속에서도 이 땅을 찾아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검독수리가 참 고맙습니다. 언젠가 검독수리를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을 만큼, 한반도가 다시 생태적으로 풍요롭고 다양성을 고루 갖춘 곳으로 회복하기를 기대합니다.
글·사진= 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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